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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과 니고데모
◎읽을 말씀 : 요 3:1-10
◎관련 찬송 : 190장, 420장
◎외울 말씀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참고 말씀 : 요 19:38-40
◎목 표 : 1)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알자.
2) 성령의 역사로 중생함을 알자.
◎공부할 내용
니고데모는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니고데모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교 안에서 발생한 분파의 하나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란 유대의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생활 전반을 관할하는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을 말하는데, 니고데모는 산헤드린의 회원으로서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층 인사였습니다.
니고데모는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능력에 감동을 받아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이유는 사람들이 알면 비난할 것이 두려워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다”(요 3:2)라고 말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는 일정 기간 정규적인 연구 과정을 거쳐 임명받은 율법학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랍비’라 불렀지만,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2. 니고데모의 충격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와서 그 당시의 관심사인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혹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막 10:17; 요 6:28)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받기도 전에 중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서 ‘거듭남’은 ‘중생’을 뜻하는 것으로 ‘위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적으로 세상에 태어나 세상에 속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영의 눈이 뜨여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중생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매인 채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또한 비록 육신은 아직 세상에 있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있으므로 항상 천국을 소유하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이 알고 믿어 온 구원관과 전혀 다르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생이란 곧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먼저, 물로 난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불신앙과 불순종과 부도덕한 생활에서 돌이켜 죄 씻음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한 사람, 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결국 중생이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나는 것이며, 이렇게 중생한 사람만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과 방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니고데모는 여전히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시고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6∼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며, 우리 마음대로 다루고 부릴 수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결과는 뚜렷하지만, 우리는 성령님께서 어떻게 임하시고 역사하시는지 알 수 없으므로 아무도 성령님을 본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중생하는 것은 눈으로 보고 알 수는 없지만, 마치 바람을 맞는 사람이 바람의 존재를 알듯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중생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장사한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영적인 일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학식과 실력이 뛰어난 박사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으로서 이러한 교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생소하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더구나 아직 중생을 체험하지 못한 그로서는 예수님의 설명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니고데모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던 어느 날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요 7:37∼44).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선지자라 하였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고 하며 쟁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잡아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자 니고데모는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 7:51)라고 예수님을 옹호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송사를 할 때에는 피고와 원고의 주장을 듣고 증언의 진위를 조사한 다음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규례를 어기고 예수님을 정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예수님을 만나러 왔던 때와는 달리,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정죄하던 바리새인들에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그의 신앙이 좀 더 성장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습니다(요 19:39∼40).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품(몰약과 침향) 백 리트라(약 33kg)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서, 이는 왕족의 장례에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대하 16:14). 즉, 그는 예수님을 왕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도망갔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며 진정한 왕으로 장사 지내 드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성경 연구
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으로 거듭나야 합니까?(공부할내용 참조)
2.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무엇으로 비유하셨습니까?(공부할 내용 참조)
◎나눔과 적용
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당신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2. 성령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과 같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역사하셨던 성령님에 대해 서로 이야기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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