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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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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1일 오후 6시. 사무실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옅게 우린 보이차에 불린 누룽지와 바나나로 저녁밥을 간단히 해결했다.
2010년 초반 이후 경기 북부지역에 10만호 가량의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그래서 경기북부와 서울을 잇는 외곽순환도로의 교통량이 족히 세배 가량 늘어난 것 같다.
퇴근길 차가 많이 막히기도하고 책도 읽을 겸 두어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 사십 분 걸려 집에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한지라 배가 고팠다. 집엔 밥이 남아있지 않아 천도복숭아 한 개와 요거트 한 개를 먹었다.
그래도 약간의 허기가 느껴졌다.
“자기야, 먹을 것 뭐 좀 더 있나?”
“바나나 먹을 래?”
“아니, 바나나는 오늘 두 개씩이나 먹었어.”
주방을 배고픈 고양이 마냥 어슬렁거리니 박스 한 켠에 담겨있는 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밤에 라면을 먹어야 하나?’ 식탁 위엔 아직 터지 않은 감자칩이 한 봉 놓여 있었다.
‘과자를 먹으면 속이 불편해질 것 같은데…… 에이, 차라리 라면을 끓여 건더기 만 먹는게 좋겠다.’
“아들~, 라면 먹을래?”
“네, 저도 라면이 좀 댕기든 참인데 마음이 통했네요.” 라며 좋아한다.
“아, 그래, 잘됐네.”
“라면은 제가 끓일게요.”
“그래 고마워. 물은 내가 전기포터로 먼저 끓여 줄게. 가스보다는 훨씬 빨리 끓지!”
잠시 후 아들은 전기포터로 끓인 물을 냄비에 붓고 매운맛 라면 두개를 끓여 내었다.
냄비 째로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내가 삼분의 일 가량을 먹고 나머지는 아들이 먹었다.
내 입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매워선지 기대했던 맛은 느낄 수 없었지만,
라면향은 47년전 비 내리던 날 잊을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 나게 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자그마한 구대들(판)에 부모님이 어렵사리 마련한 논이 있다.
어릴 때엔 농사일을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렇게 크 보였던 너마지기(800평) 논이다.
아침 해가 산을 넘고 시냇물을 건너 느지막하게 논에 온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서쪽 산은 일찌감치 햇살을 삼켜 버리는 깊은 골짜기의 들판이다. 지금은 두부모처럼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지만,
그 시절엔 지나가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논두렁이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옛날엔 일손이 늘 모자랐다. 그래서 너 나 할 것없이 예닐곱 살이면 일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5월이면 모내기를 하기 위해 소가 끄는 쟁기로 논을 갈고 물을 몇 일간 가두어 둔다.
물을 먹은 흙덩이가 허물허물 해지면 논 바닥 높이가 일정하게 되도록 소의 힘을 빌려 쓰레질을 한다.
쓰레질이 시작되면 나는 논두렁에 자라난 잡초를 낫으로 베어 쓰레질을 하고 있는 논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고 논의 가장자리 쪽의 흙을 삽이나 괭이로 파내어 물논 바닥이 낮아 보이는 곳으로 던져 놓으면 아버지는 쓰레질로 흙을 펴 골랐다.
쓰레질로 부드러워진 진흙을 얇은 괭이로 논두렁에 퍼 올려 적당한 두께로 발라야 했다.
어린 아이가 어른용 낫으로 풀을 베 내고 논두렁을 진흙으로 반들거릴 정도로 바르는 일이 얼마나 서툴렀을까?
아버지는 일을 시키기 전에 늘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중간 즈음에 반드시 확인을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것이니 일 이라기 보다는 거의 소꿉장난에 가까울 터였겠지만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주며 내게 남기던 아버지의 한 마디는 늘 내 마음 한 켠에 살아 움직인다.
“일 할 때는 생각을 함시로 하는기다 어찌하모 제대로, 빨리 끝낼 수 있을지를.” 못했다고 꾸중을 들었던 기억도 없지만 잘 했다고 칭찬을 들었던 기억도 또한 없다.
뱀처럼 반들거리게 진흙으로 논두렁을 바를 때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매끈한 촉감이 풀 베는 일 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모내기 후 논두렁 표면의 흙이 어느정도 꾸들꾸들 마르면 끝을 다듬은 막대기로 논두렁에 일정한 간격으로 푹푹 구멍을 뚫고 서리태(메주콩) 두 세 알을 넣고 구멍을 살짝 덮는다.
모내기를 위해 물논을 장만하던 그 날 오전엔 새참 시간이 되기 전부터 맑고도 추울 만큼 시원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바작대기(바지게 작대기)를 논 한 켠에 꽂아 까만 우산의 손잡이를 동여매고 활짝 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섬을 만들었다.
토란 잎처럼 펼친 우산 아래 돌덩이 두개를 나란히 벌려 놓아 화덕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해온 겉이 그을린 양은 냄비에 도랑물을 받아 와 돌 위에 걸쳐 올려 놓았다.
작년 추수 때 쌓아 둔 볏단더미에서 비에 젓지 않은 볏단과 얼마전에 타작한 마른 보릿대로 돌화덕에 불을 지폈다.
돌화덕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물안개처럼 온 들판을 덮을 즈음 아버지는 라면과 스프를 냄비에 넣고 다시 한 번 세게 짚불을 피웠다.
열 받은 시커먼 냄비가 증기 기관차 마냥 김을 푹푹 뿜어내면 뚜껑은 철길 위를 달리듯 더덜더덜 더덜더덜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냄비 위를 맴돌고 있다.
냄비가 뿜어내는 수증기엔 시냇가 바위에 붙어 있는 다슬기처럼 스프와 라면 향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입안에 한가득 고인 침을 꼴까닥 꼴까닥 라면 향과 함께 삼키고 있을 즈음……
“인자 다 익었을기다 무보자.”라며 면발을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내게 조그만 양푼에 퍼주었다.
“아부지, 잘 묵겠심니더.”
“그래, 마이 무라.”
비 내리는 들판 우산 아래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먹었던 그 라면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꼬들꼬들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
그 이름도 아직 기억한다. 소고기라면! 그때 그 맛은 인생 최고의 라면 맛이었다.
비 내리는 여름 날 들판에서 끓여 준 그 라면은 아버지가 내게 손수 해 준 유일한 음식이었다.
빗 속으로 연기가 아련히 퍼져 나가던 47년 전의 그 모습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내 맘 속에 영영히 아버지의 유산으로 걸려있을 것이다.
2020/09/07
문화선교회 심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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