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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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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도시락
2020-08-27 15:45:47
성기옥
조회수   230

겨울 도시락

2020. 8.277 

 

사그락 사그락 싸락눈이 내리는 한나절, 도시락을 바지게에 지고 발걸음 재촉한다.

바지게의 다리는 내 발목까지 내리 닿았다.

키 보다 더 높은 바작대기를 짚고 가는 모양이 바지게를 지고 가는 것인지,

내가 바지게에 붙어가는 것인지 모르게 눈길을 따라 고무신 발자국을 찍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엄마의 심부름을 가는 중이다.

집에서 2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 아버지의 임시 일터인 소나무동목(冬木) 벌목장으로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을 지고 가는 중이다.

 

보리 싹이 겨울 찬바람을 피해 논 고랑 높이만큼 배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논을 가로질러

듬성듬성 놓여있는 돌을 딛고 개울을 건넌다.

눈 덮인 넓은 뜰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일하고 있을 벌목장이 내 눈()길이 끝닿는 곳에 높이 솟아있다.

오솔길 양 옆의 키 작은 마른 풀들이 도시락을 얼른 가져가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손짓처럼 바람에 쉬지 않고 흔들거린다.

하얀 솜사탕처럼 뭉쳐있는 꽃씨를 반쯤 날려보낸 산비탈의 억새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간헐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모양이

배고픔을 참고 있는 아버지의 손짓처럼 보였다.

 

정오 햇살에 몸을 푼 오솔길의 붉은 황토는 꾸역꾸역 자꾸만 고무신 양 옆으로 기어올라온다.

생 울타리에서 놀고 있던 오목눈이(뱁새) 한 떼가 놀라서 대나무 물총에서 물이 뿜어져 나가듯 일자(一字)로 줄 지어 날아간다. 벌목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 마음은 붓이 되어 시골풍경을 가슴에 그려 담고 있었다.

 

윗동네를 가로질러 마침내 산자락에 도착했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좁다란 황톳길을 따라 고요한 산을 오를수록 내 이마엔 땀 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마른 신갈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도 어린 마음은 무서움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바람이 잦아든 양지바른 곳에 이르니 인기척에 놀란 꿩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고,

꿩보다 더 놀란 내 심장은 운동회 날 쳐대는 북처럼 쿵쾅거렸다.

산 중턱에 이르니 아버지의 장작 패는 소리가 메아리 치기 시작한다.

제대로 잘 찾아 온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아버지의 일터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아부지! 아부지!”라고 큰소리로 외쳐 불렀으나

아버지의 대답 대신 메아리만 온 산에 가득하다.

메아리 소리에 더욱 무서워진 나는 더 큰소리로 아버지를 너 댓 번을 연신 불러 댔다.

그제서야 “의!”라는 짧은 외마디 대답이 돌아온다.

 

아버지는 찬합 도시락을 바지게에서 내렸다.

그리고 웃으면서 “힘들재?”라며 나를 위로 했다.

아버지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목재로 쓸 수 없는 가지가 많이 붙어있는

소나무의 상단 원줄기의 곁가지를 톱과 낫으로 잘라냈다.

다듬어진 상단 원줄기를 내 팔 길이 보다 더 긴 톱으로 장작의 길이에 맞게 잘랐다.

그런데 돕는 일도 잠시, 어느 순간 내 머리 속엔 날카로움이 슥~하고 느껴졌다.

손 가락을 보니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아부지, 아부지”라고 소리쳐 부르며 아버지에게로 달려 갔다.

당황한 아버진 옷자락을 찢어 상처에 대고 가늘게 쪼갠 칡넝쿨로 상처를 칭칭 동여매주었다.

상처의 아픔 때문이었는지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철 따라 드릅, 고사리, 매실, 밤, 감을 수확하기 위해 산에서 일하고 있는 내년이면 팔순인 아버지를 찾으려면

지금도 여러 번을 불러야 “의”라는 외마디 대답인지 고함인지 모를 애매한 소리로 위치를 알린다.

그러면 우리 형제끼리 “아부지 지금 고라니 쫒심니꺼?”라며 아버지를 가끔 놀리곤 한다.

손가락에 선명히 남아 있는 상처를 볼 때면 어린 시절 산기슭에서 무서움에 떨며 아버지를 찾던 그 때가 생각난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아들 딸의 눈을 띄워주기 위해 농사일에 집중하느라 아들의 부름에 응답이 늦었을 테이고,

지금은 세월의 바람에 억새처럼 많은 것을 날려 보낸 지라 기력이 쇠진한 것이다.

아들 딸의 부름엔 응답하지 않아도 이젠 우리가 다가가면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엔 꼭 천국 길로 인도 되길 기도 드린다.

 

심재호 집사 (문화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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