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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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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2020-08-11 12:53:19
성기옥
조회수   248

송아지

2020. 8.11

 

대략 40년 전 어느 겨울 아침 소()가 고통스레 울부짖고 있었다.

움메~ 움메~”

어린 내게도 그 울음소리는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어머이 소가 와 저래?”

새끼 놀라꼬 저런다.” 마구간으로 달려가 보니 소가 끙끙대며 안절부절 못하고 허연 콧김을 연신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통(疝痛) 이었다. 나락(벼) 한 가마니 보다 더 커 보이는 배를 깔고 누워 한참을 씨름하더니 어느 순간 조용해 졌다. 살금살금 다시 다가가 보니 엄마 소는 평온을 되찾았고 그 옆에는 베이지색 털로 덮여있는 앙증맞은 송아지가 한 마리 누워 있었다. 어미 소는 갓 태어난 새끼를 연신 핥아주고 있었다. 어미의 혀가 지나간 자국은 베이지색 골덴 바지처럼 얕은 골이 생겨났다. 그리고 잠시 뒤 송아지는 앞다리를 먼저 일으키고선 뒷다리를 세우기 위해 휘청거리며 풀썩 주저 않고 또 주저 않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사리 일어서더니 몇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내 우찌 금방 저리 걷는 기고?’

그렇게 몇 걸음을 떼고선 겨우 엄마 소의 배 아래 젖꼭지에 다다랐다. 엄지 손가락처럼 길쭉한 젖꼭지를 찾아 물고선 가끔씩 쿡 쿡 입으로 들이 받으며 본능적으로 빨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태어난 지 10여분이 채 되지 않아 걷고, 입 주위에 하얀 우유 거품이 일 정도로 젖을 먹고 있다니……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갓난 애기였을 때 젖이 나오지 않아 밥 지을 때 솥뚜껑에서 흘러 나오는 뜨물을 먹였고, 저녁이면 동네 아주머니에게 젖 동냥을 했는데 갓 태어난 송아지 마냥 정신 없이 먹었다고 했다.

 

연한 베이지색을 띈 송아지의 털과 올망한 눈망울은 순수 그 자체였다. 송아지를 한참 지켜보던 나는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어미 소는 눈을 휘둥그래 굴리며 뿔을 휘 휘 내젓고 콧바람을 씩씩대며 나를 위협해댔다. 겁 먹은 송아지는 어미 소 뒤로 숨었다. 나는 어미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몇 일 뒤 어미 소와 나란히 누워있는 송아지 옆에 조심스레 다가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송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진짜 이뿌내.”

부드러운 송아지의 털을 어미 소가 거친 혀로 얼마나 핥았는지 몸에 찰싹 달라붙은 모양새가 꼭 몇 해 전 유행했던 중고등학생의 헤어스타일 같았다. 제 새끼를 예뻐 해주니 어미 소는 내가 제 새끼라도 된 양 나를 핥아주었다.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제 새끼를 귀여워해주니 어미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버리고 오히려 장난질을 해댔다. 역시 사랑을 주는 것이 곧 사랑을 받는 비결인 것 같다.

 

송아지가 너무 예뻐 나는 한동안 목덜미를 끌어안고 놀았다. 봄이 되면 어미 소가 멍에를 목에 메고 논밭에서 쟁기질을 할 때면 송아지는 어미를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하고, 워낭 소리와 함께 온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 놀았다. 그렇게 한 2년쯤 지나니 베이지색 털을 갈색으로 바꿔 입고 어느덧 고삐만으로는 다룰 수 없을 정도로 힘도 세어지고 훌쩍 자랐다.

음메 음메 음메......”

겁에 잔뜩 질린 송아지는 크다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발버둥을 쳐댄다. 그러나 목이 양쪽으로 단단히 붙들어 매여 있으므로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싸리나무 송곳으로 송아지의 코를 뚫고 노송나무 가지로 만든 코뚜레를 끼우고 코 안쪽의 상처에 척하니 된장을 붙였다. 목에 고삐로만 묶여 어느 정도 자유롭던 송아지는 코뚜레가 끼워지고 서야 일소로 바뀌었다. 저렇게 코뚜레를 끼워야 말을 잘 듣는 것 보다 느슨한 고삐에 매였을 때 말을 잘 들으면 더 좋으련만......

 

재호야, 밭에 가자.”

아버지는 훌치(쟁기)를 지게에 지고 코뚜레를 한 송아지와 나를 데리고 밭으로 갔다. 밭 가운데서 송아지의 목위에 멍에를 얹고 훌치를 연결하고서는

송아지 길 좀 들이게 니가 코뚜레 잡고 앞에서 껄가봐라.”

송아지 앞에 선 나는 양손을 뒤로한 채 코뚜레를 붙잡고 앞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역할은 송아지를 이끄는 단순한 것 이었으나, 나 보다 훨씬 크고 거칠어진 송아지를 잡고 똑바로 나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앞으로 송아지를 끌고 가기만 했는데, 밭 이랑이 삐뚤 삐뚤 했든지 아버지는

똑바로 가야제.”

저기 먼디 보이는 나무를 보고 똑바로 가모 덴다.”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그때 송아지 길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아들의 인생교육도 함께했던 것 같다. ‘멀리 목표를 보고 똑 바로 나아가라고.’ 올해 19살인 아들과 내가 함께 차를 마실 때면 아들에게

너의 꿈을 갖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미시적(微視的)인 관점과 거시적(巨視的)인 관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라고 가끔씩 말한다. 그러면서 나 또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지혜를 구하며 삶의 방향을 다잡아 가고 있다.

 

심재호 집사 – 문화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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