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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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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20-08-18 12:27:36
성기옥
조회수   242

고구마

2020. 8. 18

 

햇살 따듯한 겨울 한나절이다. 시냇가의 두 평 남짓한 모래밭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저 멀리 눈() 닿는 곳엔 병풍처럼 둘러있는 앞산이 있고, 오후 3시면 대()밭과 뒷산이 차가운 그림자를 살금살금 내리기 시작하는 지리산 자락의 놀이터였다.

들판 사이로 흐르는 두 갈래의 시냇물은 돌고 돌아 모래밭을 적신다. 햇빛 머금은 시냇물은 은빛으로 일렁이고, 금빛으로 달궈진 모래는 아이들의 맨발을 따듯하게 데운다. 작은 애호박 크기로 토닥토닥 모래를 쌓아 두꺼비집을 만들고, 까만 고무신을 연결하여 기차 놀이도 한다.

가위바위보로 가족 구성원을 정해 소꿉놀이를 한다. 냇가에서 주운 꼬막이나 바지락 껍질에 모래알로 밥을 짓고, 양지(陽地)에 자란 부드러운 겨울 풀로 국을 끓이고, 물가에 자란 미나리로 나물을 무쳐 올린 밥상에 둘러앉아 억새젓가락으로 밥 먹는 놀이를 한다.

 

재호야, 밥 무라!” 엄마의 부름에 부리나케 하던 놀이를 끝내고 겨울 보리밭을 가로질러 대문 앞으로 달려 갔다. 그런데 대문으로 통하는 보리논에 나의 허리춤만큼이나 높은 가시덤불이 쌓여 있었다. 보리밭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둔 것이다. 어린 나의 눈에도 멀리서 달려오면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점심 거리로 삶아 두었을 고구마를 생각하며, 멀리뛰기 선수처럼 가시덤불 뒤로 10여 미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힘껏 앞으로 내달리며 몸을 휘익 날렸다. 순식간에 가뿐히 솟구친 나는 가시덤불 위를 날고 있었다.

어어…… “퍽~!”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아뜩해졌다. 너무 멀리 날았다. 장독대 담장 모서리에 이마가 부딪치고 서야 비행(飛行)을 멈춘 것이다. 뜨끈하게 흘러내리는 이마의 붉은 피를 보고 울면서 큰 소리로 엄마를 연신 불러댔다.

어머이!” “어머이!”놀란 엄마는 상처에 빨간색 머큐럼을 바르고 헝겊으로 감싸 묶어주었다.

 

지난 10월 2부 예배를 드리고 1층 로비로 올라오니 안내실 한 켠에 호박고구마 박스가 쌓여 있었다. 나중에 사면 다 팔리고 없을 것 같아 추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한 박스를 얼른 사두었다. 어린 시절 겨울철 점심 끼니로 먹던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 자란 물 고구마였다. 그러나 갓 삶아 낸 고구마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김과 함께 달콤하게 퍼지는 향은 잊을 수 없는 엄마의 향기이다.

197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낸 사람들은 고구마, 감자, 토란, 김치국밥, 수제비, 쑥버무리 등을 대개 점심 끼니로 대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은 어린 시절에 많이 먹었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제비를 먹지 않았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맛이 없다기 보다는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때문이었다.

30년이 넘도록 수제비를 먹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그 생각의 틀을 깼다. 감자와 호박이 들어있는 수제비를 먹어 보았다. 감자의 부드럽고 시원함과 애호박의 달착지근한 맛이 어울려 싫었던 기억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입맛이 없을 때면 오히려 수제비를 찾곤 한다.

 

게, 가재 등의 갑각류와 파충류는 일생 동안 껍질을 여러 차례 벗는다. 그럴 때마다 더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마찬 가지로 나 또한 ‘수제비는 맛이 없다’라는 생각을 깨고 보니 그 참 맛을 알게 되었고 이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되돌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나 만의 생각에 갇혀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서 느낄 수 있는 참 맛을 느끼고 있는지, 어린 시절 모래알로 밥을 지으며 소꿉장난하던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내가 벗어야 할 껍질은 무엇인지 살펴 봐야겠다.

 

심재호 집사  (문화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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