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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교안] 제4과 축복의 복음 - 10월 첫째 주
2025-09-21 23:33:52
관리자
조회수   13

제4과 축복의 복음

◎읽을 말씀 : 고후 9:6-9
◎관련 찬송 : 446장, 429장
◎외울 말씀 :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참고 말씀 : 고후 8:9; 빌 4:19
◎목     표 : 1)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2) 축복의 신앙과 샤머니즘적 신앙의 차이를 알아보자.

◎공부할 내용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으면 고통을 당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가난과 고통 가운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거룩한 생활일까요?


 1. 물질세계를 먼저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물질세계, 즉 천지와 만물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물질세계를 지으시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로 인간의 먹을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창 1:29).
 인간이 지음 받은 다음 날은 야훼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음 받은 후 곧 하나님의 안식 속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풍부한 물질세계를 누리고 다스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물질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미리 다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처음 세상은 분명히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이 다 준비된 풍요로운 세상이었으며, 또 인간의 의식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범사에 잘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간은 왜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2. 왜 범사가 잘못되었는가?


 인간의 범사가 잘못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다 허락하셨지만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이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짓밟는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고 그들은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으며, 그로 인해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며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창 3:16∼19). 이러한 저주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저주받은 상태로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갈 수밖에 없을까요?


 3. 십자가 대속의 은총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평생 청빈한 삶을 사셨으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친히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부요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만 대속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저주도 속량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것은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갈 3: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저주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4. 축복의 신앙과 샤머니즘적 신앙의 차이


 샤머니즘이란 원시 종교의 하나로서 자칭 신의 대언자라고 하는 ‘샤먼’(Shaman)들이 사람들에게서 화를 면하게 해 주고 복을 빌어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넓은 의미로는 일월성신이나 산천초목에 제사드리고 절하면서 복을 비는 행위를 통틀어 샤머니즘이라고 합니다. 이 샤머니즘은 근본적으로 인간 심리에서 출발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큰 힘에 의지해서 화를 면하고 복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일월성신이나 산천초목에 절하고 무당을 찾아가서 화를 면하고 복을 얻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샤머니즘적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샤머니즘은 하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경건이 없으며 단지 화를 면하고 복을 받겠다는 기복적 행위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복의 신앙’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영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그들 주위에는 물질적인 풍요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오직 부요와 축복만 있었습니다. 이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샤머니즘에는 ‘구원’이란 개념이 없지만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샤머니즘은 현세의 삶만 강조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면이 없는 반면, 기독교의 축복은 내세의 부활과 영생의 복을 믿기 때문에 윤리적입니다. 그런가 하면 샤머니즘은 귀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나 일관성이 없지만,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에 확실하며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누리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다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이며,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 그 자체보다 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축복을 구하는 행위는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는 이러한 축복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선포해야 합니다.


◎성경 연구

1.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고후 8:9; 갈 3:13∼14; 공부할 내용 참조)
2. 축복의 신앙과 샤머니즘적 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공부할 내용 참조)
                                             
◎나눔과 적용

1. 성경적인 축복관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2.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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